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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마산

영화<굿바이 마산>, "내가 아를 유산시키서 이리 벌을 받나..." (7)춘희의 쓸쓸한 독백

 

 

# 바닷가 / 오후
수출 공장이 보이는 바닷가 해변에 춘희 홀로 앉아있다.

"내가 마산에 온 게 ... 열일곱이었었지(뒤돌아 손으로 가리키며).

 내가 저 뒤에 수출 공장 다녔었다아이가..."

    
 


"내가 젊을 때는 얼굴이 참 고왔지 그러니까 공장장이 계속 괴 롭혔지 그때는 얼굴이 반반하게 생겼다 시퍼면

 가만 두질 않았으니까."


 그래 우짜겠노~ 그땐 나이도 어려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지~. 임신이 됐는데...

 그게 소문이 돌았다 아니가. 그래서 내는 쫓겨나고 공장장은 서울로 발령 받아 가고..."

 

 아는 언니하고 같이 소개 받아 가가 유산 시켰다. 갈때가 어디 있겠노? .... 그래 오동동에 들어왔지."

    
 


"(손톱을 뜯고 있는 손) 누가 마산이 이래 될줄 알았겠나? 알았으면 가게 인수도 안했지~.

  그때 내가 아를 유산시키서 이래 벌을 받고 있나 싶기도 하고......"

 

 

 

<작가갈피>
원래 '굿바이 마산'은 장편 시나리오였습니다. 지금의 ‘굿바이 마산’에서는 춘희가 40대일 때부터 영화가 시작되지만,

본래 시나리오에선 10대의 춘희가 먼저 등장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위 춘희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10대의 춘희는 수출공장에 다녔었구요.

아마, 한일합섬 쪽에 다니지 않았을까 추측이 됩니다.^^

 

안 좋은 일을 겪고 공장에서 나와 지금의 방석집이 아닌 ‘요정’에서 먼저 일을 시작합니다.

‘요정’은 방석집 보다는 고급스러운 술집인데요. 그 곳에서 춘희는 고운 얼굴에 노래를 잘 하는 소녀였습니다.

40대의 춘희가 지금의 마산을 상징한다면, 그 때의 춘희는 당시 호황기였던 80년대 마산을 상징한다고 보시면 되요.

 

춘희는 그 시절, 마산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도 하고, 부마항쟁을 겪기도 합니다.

살면서 직접 마음으로 통과해 낸 시간과 풍경들은 쉽게 잊기가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오동동에서 가게를 인수한 뒤,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도시를 보는 게 춘희는 꽤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씬에서는 춘희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졌는데요. 가장 중요한 대사는 바로 마지막 대사입니다.

 

“ 그때 내가 아를 유산시키서 이래 벌을 받고 있나 싶기도 하고......”

 

앞서 말씀드렸듯, 춘희는 마산을 상징하는 인물인데요. 그럼 춘희가 유산 시킨 아이는 무엇을 비유하는 걸까요?

산업화 시대에 마산이 유산시킨 것.

 

그 답은 다음편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출처:http://www.masan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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