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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기사] 하염없이 걷다보니 상처 난 마음 새살 돋아 (경남도민일보 2015.11.04)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창원대의 한 강의실, 여학생 20여 명 얼굴이 스크린에 나왔다 없어진다. 어제도 그저께도 걸었다는 아이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카메라를 든 친구에게 "아이 찍지 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방 다시 웃으며 인터뷰에 응한다. 카메라를 든 아이는 구상했던 풍경이 화면에 잡히지 않자 아쉬워하다 저만치 걷는 친구들을 향해 뛰어간다.

공공미디어 단잠과 창원 범숙학교가 만든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도전> 상영회가 열렸다.

10박 11일간 200㎞가 넘는 지리산 길을 걸었던 범숙소녀들의 뜨거운 여름이야기가 90분짜리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범숙학교는 극기인성프로그램 '아름다운 도전'을 15년째 하고 있다. 위기청소녀가 모인 범숙학교 재학생과 경남범숙의 집, 우리아이집 입소자들이 도보여행을 하며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치유 특화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단잠이 함께 걸었다.

김달님 단잠 팀장은 "2013년부터 범숙학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첫해 사진 교육을 했고 지난해에는 단편영화 <포대아이>를 찍었다. 올해는 다큐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단잠은 지난 7월 촬영 기법과 구상잡기, 인터뷰 교육을 시작했다. 범숙학교 학생들은 영화 <완득이>를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활용해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6컷 영상만들기 작업도 해냈다.

그리고 여학생 6명이 지난 8월 19일 카메라를 들고 지리산 둘레길에 섰다. 이들은 열흘 넘게 친구와 선생님, 주위 풍경을 촬영했다. 카메라마다 하루 촬영분 10시간, 총 11일. 모두 660시간 분량을 찍었다. 창원에서 출발해 남원을 거쳐 산청, 지리산 천왕봉까지 걷는 아이들. 비가 와도 전진해야 했던 아이들은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

아이들은 이후 영상편집에 참여하고 내레이션을 맡아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영화 처음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밑그림도 직접 그렸다.

이날 <아름다운 도전>을 본 학생들은 말했다.

"내가 아도(아름다운도전)를 하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달라졌다는 게 신기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에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상을 보면서 느꼈다. 아도는 대단하다. 오늘 기분 최고다."

"할 때는 아주 힘들었는데 이제 와 보니 너무 좋다. 정말 추억에 남을 것 같다."

이날 상영회를 찾은 관객도 소감을 전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했습니다. 잘 봤습니다. 울컥울컥 감동 많이 받았어요."

"'그냥 걸을 땐 몰랐는데 돌아보니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란 내레이션이 특히 가슴에 남네요. 저도 카메라 들고 남원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천왕봉에 올린 돌멩이처럼 단단한 꿈을 응원합니다."

박영묵 범숙학교 교사는 "카메라로 촬영한 친구도 찍힌 아이도 당시에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모두 뿌듯해했다. 상영회가 끝나고 터져 나온 박수에 아이들의 자존감은 높아졌을 것이다. 위기청소녀들의 도전은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과 타인과의 화해를 이끌어준다. 이를 영상으로 남겼다면 배가될 것이다"고 했다.

앞으로 <아름다운 도전> 상영회는 별도로 없다. 단잠은 다큐멘터리를 DVD로 제작해 범숙학교에 기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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